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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사계 중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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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2 박종세 작성일18-07-25 17:15 조회2,1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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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 Vivaldi(1678 ~ 1741 / 이탈리아)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741년 빈에서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인 동시에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가 였으며, 또한 교육가이기도 하였다. 1703년 카톨릭 성당의 사제로 출발하였으나 건강이 나빠져 1년 후에 물러나 그 후로는 전적으로 음악에 헌신하였다. '비발디'는 붉은머리였기 때문에 항상 '빨강머리의 사제'라고 불리웠었다. 그리고 1703 ~ 1740년까지 베니스의 여자 고아원인 피에타 음악학교의 지휘자 겸 작곡가, 교사, 음악 감독을 역임했었다.
그는 이 학교를 위하여 모테트와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을 작곡하였다. 특히 '비발디'가 결정한 3악장(알레그로-아다지오- 알레그로)에 의한 협주곡 형식은 J.S.Bach에게 영향을 주어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협주곡 형식이 되었다.

비발디는 미사전례를 앞두고도 온데간데없이사라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사방을 찾아다니노라면 수도원 으슥한 구석에서 바이올린이나 켜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니, 결코 모범적인 사제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작곡가겸 바이올리스트로서의 그의 명성은 이미 전 유럽에 퍼져 있었다. 25세 때는 피에타 여자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임명되었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그 곳의 오케스트라는 상당히 수준이 높아 그녀들을 위해 많은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똑같은 곡을 1백곡이나 써갈긴 사람이다.' 이것이 험담가로도 유명한 후세의 스트라빈스키가 비발디를 가르켜 비꼬아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발디는 교회용, 행사용 등등으로 몇 개 악장으로 되어 꽤 긴 곡을 평균 2,3일에 한 곡씩은 써야 할 처지였다. 사보가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 만큼 초고속으로 작곡을 해댄 결과 그는 협주곡만 해도 450곡이나 남겼으니 그게 그거라고 할 정도로 서로가 엇비슷해질 수밖에. 45세 무렵 비발디는 안나 지로라는 여가수를 알게 되어 순회공연까지 함께 다녔다. 당연히 사제로서 미사를 빼먹는 일은 더욱 잦아졌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고울 리 없었다.
베 네치아에서의 그의 평판은 갈수록 땅으로 떨어졌다.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 유럽 각지를 전전해야 했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극도의 빈곤 속에서 객사한 것은 그의 나이 63세 때였다. 피붙이라고는 없었던 그를 기다리는 곳이라고는 빈 변두리의 쓸쓸한 빈민묘지 뿐이었다.

비발디의 음악은 한때는 잊혀져가는 듯했지만 2차 대전 이후로 다시 소생해 세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실내악단에서는 그의 각종 악곡들을 빼놓을 수 없는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고 하며, '비발디'의 협주곡 중에서 제5번 A장조 '바다의 폭풍우', 제6번 a단조 '즐거움', 제7번 D장조, 제18번 g단조, 그리고 '사계'는 너무나 잘알려진 곡이다. 이 사계는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의 선조가 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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