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Symphony No.0 in D minor, WAB 100 브루크너 교향곡 0번 D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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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2 박종세 작성일18-12-14 17:39 조회1,92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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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kner, Symphony No.0 in D minor, WAB 100
브루크너 교향곡 0번 D단조
Anton Bruckner
1824-1896
Paavo Järvi, conductor
hr-Sinfonieorchester(Frankfurt Radio Symphony Orchestra)
Alte Oper Frankfurt
2017.03.24
Paavo Järvi/FRSO - Bruckner, Symphony No.0 in D minor, WAB 100
고금을 통틀어 작곡가 자신이 ‘0번’이라는 번호를 붙여 놓은 교향곡은 이 작품뿐이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자신의 작품이라면 어느 것이나 소중한 게 작곡가의 마음일진데, 마음 약한 브루크너는 이 작품에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0번’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이런 흔치 않은 이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한번 살펴보자.
시기상으로 1869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사실 1866년에 이미 첫 원고를 마친 교향곡 1번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원고는 벌써 한 번의 교정을 거친 것이고, 최초의 스케치는 1863년 무렵에 이미 시작되었다. 브루크너는 이 작품을 1번 교향곡과 함께 당시 그의 연고지였던 린츠에서 연주할 계획이었고 이 작품에 1번, 현재의 1번에는 2번 교향곡이라는 표제를 달아두었다.
사건의 발단은 오토 데소프라는 지휘자에서 시작된다. 빈 필하모닉의 지휘자였던 데소프는 브루크너로부터 받은 이 작품을 검토한 후,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미스터 브루크너, 도대체 1악장의 주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마흔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이제 작곡가로서 첫걸음을 내디디려 하던, 더군다나 천성적으로 수줍음을 많이 탔던 브루크너에게 데소프의 이 한 마디는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브루크너는 작품 표지에 ‘삭제’라는 단어를 휘갈겨 썼고, 이후 단 한 번의 개작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톤 브루크너. 1894년 성 플로리안 교회에서. 브루크너는 성 플로리안 교회 소년합창단의 성가대원이었고 24세부터 평생 이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서 봉직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 작품이 그렇게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일까? 이 작품은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d단조라는 으뜸 조성에서부터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 분명하고, 데소프의 지적처럼 1악장의 주제가 단편적으로만 등장하고 있어서, 후기 작품과 같은 확실한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베토벤의 초기 교향곡에서 하이든의 영향이 느껴진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거의 없듯이, 초기 작품에서 작곡가의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큰 흠이 될 수는 없다. 어느 작품에서보다 미끈하게 잘 빠진 스케르초 악장이나, 고전파의 소나타 형식과 대위법적인 울림을 얼버무려 놓은 마지막 악장은 브루크너 음악 인생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3번 교향곡 이전의 어떤 작품들보다 멋진 모습임이 분명하다.
이 작품이 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오히려 4번 이후 교향곡들에서 보이는, 완성된 브루크너의 모습에만 안주하고자 했던 지휘자들이, 상당히 다른 개성을 지닌 이 초기 작품을 등한시한 데에 더 큰 이유가 잇을 것이다. 초기부터 브루크너 녹음에 열심이었던 오이겐 요훔조차 이 작품은 녹음한 적이 없어서, 하이팅크/콘세르트헤바우의 브루크너 전집이 이 0번 교향곡을 포함한 최초의 전집이다. 낱장으로 나와 있는 음반들 역시 1980년 이후의 녹음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더라도 교향곡 0번에 대한 지휘자들의 무관심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Bruckner, Symphony No.0 in D minor, WAB 100
Bernard Haitink, conductor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Concertgebouw Amsterdam
1966.06
추천음반
추천음반은 원 글에는 ‘음반 비교 감상’이란 제목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간단하게 줄였습니다.
1. 다니엘 바렌보임/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9, DG. 필자가 추천하는 이 작품 최고의 연주다.
2. 페르디난트 라이트너/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1960, Orfeo. 초기 브루크너 해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녹음이다.
3. 게오르크 틴트너/아일랜드 국립 오케스트라, 1996, Naxos. 브루크너의 악보 연구와 연주에도 틴트너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웅변하는 음반이다.
4. 엘리아후 인발/프랑트푸르트 방송교향악단, 1992, Teldec. 전 악장에서 금관악기들이 마음껏 기량을 과시할 수 있도록 금관의 울림을 강조하고 있다.
글쓴이 박진용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건축공학과)에 재학 중 고전음악 감상 동아리인 ‘연세음악동우회’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레코드 포럼, 코다 등 여러 음악 매체에 음반 리뷰와 음악 관련 기사를 기고했다. 독일 음악, 특히 바흐, 베토벤, 브루크너의 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졌으며,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의 열렬한 팬이었다. 1999년 압구정동에 음반 가게 ‘서푼짜리 레코드’를 개업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방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경영난으로 접었다. 그 후 다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2004년 6월 24일 38세를 일기로 아깝게 타계했다.
출처 : 박진용 지음, 연세음악동우회 기획, <브루크너 - 완벽을 향한 머나먼 여정>, 도서출판 리수, 2014
브루크너 교향곡 0번 D단조
Anton Bruckner
1824-1896
Paavo Järvi, conductor
hr-Sinfonieorchester(Frankfurt Radio Symphony Orchestra)
Alte Oper Frankfurt
2017.03.24
Paavo Järvi/FRSO - Bruckner, Symphony No.0 in D minor, WAB 100
고금을 통틀어 작곡가 자신이 ‘0번’이라는 번호를 붙여 놓은 교향곡은 이 작품뿐이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자신의 작품이라면 어느 것이나 소중한 게 작곡가의 마음일진데, 마음 약한 브루크너는 이 작품에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0번’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이런 흔치 않은 이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한번 살펴보자.
시기상으로 1869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사실 1866년에 이미 첫 원고를 마친 교향곡 1번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원고는 벌써 한 번의 교정을 거친 것이고, 최초의 스케치는 1863년 무렵에 이미 시작되었다. 브루크너는 이 작품을 1번 교향곡과 함께 당시 그의 연고지였던 린츠에서 연주할 계획이었고 이 작품에 1번, 현재의 1번에는 2번 교향곡이라는 표제를 달아두었다.
사건의 발단은 오토 데소프라는 지휘자에서 시작된다. 빈 필하모닉의 지휘자였던 데소프는 브루크너로부터 받은 이 작품을 검토한 후,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미스터 브루크너, 도대체 1악장의 주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마흔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이제 작곡가로서 첫걸음을 내디디려 하던, 더군다나 천성적으로 수줍음을 많이 탔던 브루크너에게 데소프의 이 한 마디는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브루크너는 작품 표지에 ‘삭제’라는 단어를 휘갈겨 썼고, 이후 단 한 번의 개작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톤 브루크너. 1894년 성 플로리안 교회에서. 브루크너는 성 플로리안 교회 소년합창단의 성가대원이었고 24세부터 평생 이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서 봉직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 작품이 그렇게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일까? 이 작품은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d단조라는 으뜸 조성에서부터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 분명하고, 데소프의 지적처럼 1악장의 주제가 단편적으로만 등장하고 있어서, 후기 작품과 같은 확실한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베토벤의 초기 교향곡에서 하이든의 영향이 느껴진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거의 없듯이, 초기 작품에서 작곡가의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큰 흠이 될 수는 없다. 어느 작품에서보다 미끈하게 잘 빠진 스케르초 악장이나, 고전파의 소나타 형식과 대위법적인 울림을 얼버무려 놓은 마지막 악장은 브루크너 음악 인생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3번 교향곡 이전의 어떤 작품들보다 멋진 모습임이 분명하다.
이 작품이 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오히려 4번 이후 교향곡들에서 보이는, 완성된 브루크너의 모습에만 안주하고자 했던 지휘자들이, 상당히 다른 개성을 지닌 이 초기 작품을 등한시한 데에 더 큰 이유가 잇을 것이다. 초기부터 브루크너 녹음에 열심이었던 오이겐 요훔조차 이 작품은 녹음한 적이 없어서, 하이팅크/콘세르트헤바우의 브루크너 전집이 이 0번 교향곡을 포함한 최초의 전집이다. 낱장으로 나와 있는 음반들 역시 1980년 이후의 녹음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더라도 교향곡 0번에 대한 지휘자들의 무관심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Bruckner, Symphony No.0 in D minor, WAB 100
Bernard Haitink, conductor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Concertgebouw Amsterdam
1966.06
추천음반
추천음반은 원 글에는 ‘음반 비교 감상’이란 제목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간단하게 줄였습니다.
1. 다니엘 바렌보임/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9, DG. 필자가 추천하는 이 작품 최고의 연주다.
2. 페르디난트 라이트너/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1960, Orfeo. 초기 브루크너 해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녹음이다.
3. 게오르크 틴트너/아일랜드 국립 오케스트라, 1996, Naxos. 브루크너의 악보 연구와 연주에도 틴트너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웅변하는 음반이다.
4. 엘리아후 인발/프랑트푸르트 방송교향악단, 1992, Teldec. 전 악장에서 금관악기들이 마음껏 기량을 과시할 수 있도록 금관의 울림을 강조하고 있다.
글쓴이 박진용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건축공학과)에 재학 중 고전음악 감상 동아리인 ‘연세음악동우회’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레코드 포럼, 코다 등 여러 음악 매체에 음반 리뷰와 음악 관련 기사를 기고했다. 독일 음악, 특히 바흐, 베토벤, 브루크너의 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졌으며,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의 열렬한 팬이었다. 1999년 압구정동에 음반 가게 ‘서푼짜리 레코드’를 개업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방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경영난으로 접었다. 그 후 다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2004년 6월 24일 38세를 일기로 아깝게 타계했다.
출처 : 박진용 지음, 연세음악동우회 기획, <브루크너 - 완벽을 향한 머나먼 여정>, 도서출판 리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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