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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Philipp Emanuel Bach - Double Concerto in E-flat major, H.479 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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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2 박종세 작성일20-01-16 12:14 조회2,0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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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Philipp Emanuel Bach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1714-1788)

Carl Philipp Emanuel Bach - Double Concerto in E-flat major, H.479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 이중(더블) 협주곡 E-flat장조



Carl Philipp Emanuel Bach Concerto for Harpsichord and
Fortepiano in E-Flat Major, H. 479:
I. Allegro di molto
Michael Behringer (미하엘 베링어)
Christine Schornsheim (크리스티네 쇼른스하임)
Conductor: Gottfried von der Goltz (고트프리트 본 데 골츠)
Freiburg Baroque Orchestra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Carl Philipp Emanuel Bach Concerto for Harpsichord and
Fortepiano in E-Flat Major, H. 479:
III. Vivace




Carl Philipp Emanuel Bach Concerto for Harpsichord and
Fortepiano in E-Flat Major, H. 479:
II. Larghetto




C. Ph. E. Bach - Double concerto in E-flat (Wq. 47; H.479)
The Amsterdam Baroque Orchestra(암스테르담 바로크 관현악단)
Tini Mathot 티니 맬롯 (fortepiano)
Ton Koopman 톤 코프만(harpsichord)




Concerto in E flat Major for Harpsichord and Fortepiano, H 479
C.P.E. Bach Artistic Personnel:
fortepiano Mario Aschauer
harpsichord Matthew Dirst, artistic director




칼(카를) 필립 에마뉴엘 바흐( CarlPhilippEmanuelBach )는 독일 후기바로크시기와 #로코코시대를거쳐
전기고전주의시대의 주도적 작곡가로서 요한세바스티안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와
첫 번째 아내 마리아바르바라바흐(Maria Barbara Bach, 1684-1720) #사이에 #태어난 다섯자식 중
생존한 둘째아들이다. 그는 어려서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아버지 바흐를 계승해 나름대로 독자적
위치에 이르렀다.


그의 자서전에서 <"나는 작곡과 건반 악기 연주를 위하여 아버지 외에는 선생을 둔 적이 없었다.">고 썻다.
또한 그는 흔히 베를린의바흐(Berlin Bach) 또는 함부르크의바흐(Hamburg Bach)라고도 알려져 있다.


작센-바이마르(Sachsen-Weimar)의 바이마르(Weimar)에서 태어나 1723년 장크트 토마스 교회
(Thomaskirche)의 악장으로 지명된 아버지 바흐를 따라 라이프치히(Leipzig)로 이주해 형과 같이
토마스 학교(St. Thomas School)에 입학하였고 1731년 그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라이프치히 대학(University of Leipzig)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이후 1735년부터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공부를 계속해 1738년 법학으로 학위를 받았으나 음악이외의 직업을 가질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그는 이로부터 몇달후에 맏형인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
(Wilhelm Friedemann Bach , 1710-1784)의 친구이며 아버지 바흐와 즉흥 연주를 겨루었던 류트 연주가
실비우스 레오폴드 바이스(Sylvius Leopold Weiss, 1687-1750)로부터 추천을 받아 훗날 프로이센
(Preußen)의 대공( #Great )에 오르는 프리드리히 왕자(Crown Prince Frederick)의 궁정에서 음악가로
일하게 되었다. 1740년 프로이센 왕위 계승으로 대공이 된 프리드리히 2세( #FriedrichII, 1712-1786)에
의해 대공의 전속 오케스트라의 반주자이자 베를린 궁정 예배당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임명되었으며
이 당시 이미 그는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클라비어 연주가로 정평이 나 있었고, 1731년에는 하프시코드와
클라비코드를 위한 약 30개의 소나타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가장 저명한 군주(대왕) 가운데 하나로 그 자신 스스로가 재능 있는 아마추어
음악가이기도 했던 프로이센의 대공 프리드리히 2세의 궁정 음악가로 30년 가까이 봉직했다. 베를린
시기 마그니피카트(Magnificat/1749), 부활절 칸타타(Easter cantata/1756), 몇몇 교향곡들과 협주곡
그리고 3권의 노래 모음집, 약간의 세속 칸타타(secular cantatas)등을 작곡하였고 무엇보다도
심혈을 기울인 클라비어 작품에는 200여곡의 건반 소나타(Mit veränderten Reprisen, 1760–1768)를
포함하는 다른 솔로들을 작곡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높은 명성은 그가 대공 프리드리히 2세와
뷔템베르크(Württemberg)공작 카를로스 유진(Charies Eugene)에게 각각 헌정한 2개의 소나타 세트에
의해서였다.


1746년에는 실내악장에 지명된 그는 대공의 궁정에서 함께 봉사하는 동료들인 저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요한 고트리프 그라운(Johann Gottlieb Graun, 1703-1771)과 대공의 플루트 스승이며 플루트 연주자인
요한 요하임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 1697-1773) 및 프란츠 벤다(Franz Benda, 1709-1786)등과
교류하였다.


윤리와 법률에 대한 반영을 기초로 한 근대적인 관료 정치를 정립하는 등 지속적으로 견지했던 열정으로
체제를 개혁하던 대공(프리드리히 2세)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사이에 일어난 7년 전쟁동안(1756-1763)
대공의 관심은 문화보다는 정치와 외교적인 문제에 집중되었으며 더욱이 대공이 지나치게 굴종을 요구하게
되고 서로의 관계가 점차 악화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대공을 위해 봉사하다가 1767년 자신에
대부(代父)였던 게오르크필리프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의 #후임으로 베를린을 떠나
함부르크 궁정의 음악 감독으로 가게 되었다. 1767년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의 후임으로 함부르크로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된 것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사연이 있었다.


그의 고용주인 프리드리히대공 의 지속적인 이웃나라들과의 전쟁에 몰입하면서 음악과 점차 멀어졌다는 게
하나의 요인이기는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것은 대공의 음악에 대한 관심도가 대공의 플루트 선생이었던
요한 요하임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 1697-1773)에게로 기울어져서 그의 직위에 소홀한 태도를
보였다는 데 있었다. 이에 더하여 1756년 요한 프리드리히 파슈(Johann Friedrich Fasch, 1688 – 1758)가
대공의 반주자로 발탁 되었고 이때 사직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으나 그의 사임은 대공에 의해 승낙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1767년 가까스로 대공의 허락을 받고 베를린을 떠날 수 있었으며, 함부르크에서 그는
함부르크의 바흐(Hamburg Bach)로 불리는 등 커다란 음악적인 신망을 얻게 되었다. 탁월한 언변과
음악으로 인하여 모든 유럽 학자들과 정치적인 행동주의자들이 그의 곁에 몰렸고 함부르크에서
동시대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과 카를 하인리히 그라운
(Carl Heinrich Graun, 1704-1759) 및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과 함께
대부이며 저명한 작곡가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에게서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


예술적인 모든 유형에서 그의 관심은 프리드리히 고트리프 클롭스토크(Fridrich Gottlieb Klopstock,
1724-1803), 모세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 1729-1786), 고트홀트 에브라임 레싱
(Gotthold Ephraim Lessing, 1729 -1781)과 같은 시인이나 극작가와 철학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펠릭스 멘델스존등과
같은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 작품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베를린 시절의 보수적인 과거 지향적인 작품들에 비해 함부르크 시절에는 진취적인 성향을
보여 어느 시기보다도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썻으며 특히 교향곡이나 협주곡과 건반 소나타등은 고전 '
소나타 알레그로(sonata allegro)형식 (줄여서 소나타 형식이라 하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후대의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또한 후배 작곡가인 하이든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만년에 하이든이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에 비견 할 수 있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건반 악기 연주법에 관한 소고"는 논서 중의
논서라는 극찬과 권위 있는 지침서로서 이후 두 세대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으며 1780년
세 번째 개정판으로 나온 그의 '올바른 클라비어 연주법에 관한 시론
(Versuch über die wahre Art das Clavier zu spielen)'은 유럽 음악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오페라를 제외한 전 분야에 걸쳐져 있으며 호모포닉한 주제의 취급, 균형잡힌 형식
감각등 고전파 양식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참신한 조바꿈, 셈여림이나 템포(tempo)의 급격한 변화
등은 다감양식(empfindsamer Stil)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1788년 함부르크에서 생애를 마감하였으며,
사후에 함부르크의 장크트 미하엘 교회(Sankt Michaels Kirche)에 묻혔다.


자신이 활동하던 18세기 당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클라비어(Klavier; 건반) 연주자이며 작곡가였던
카를필리프에마누엘바흐 는 가곡, 아리아, 교회 전례 음악, 수난곡, 칸타타, 모테트와 코랄등의
종교 성악곡들과 건반 소나타, 협주곡(Concertos)과 푸가, 환상곡, 미뉴에트, 폴로네즈, 알레그로와
같은 건반을 위한음악과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첼로, 비올라,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소나타, 트리오 소나타등 400여 곡이 넘는 다양한 여려 유형의 실내악곡과 협주곡, 교향곡
(Symphonies)등의 기악 음악 포함하는 다작의 음악 작품을 구성하였으며 그의 작품 중 협주곡은
건반(Keyboard), 플루트(Flute), 첼로(Cello), 오보에(Oboe), 바이올린(Violin)등을
위해 100여곡이 넘는 작품을 구성했다.


벨기에의 음악학자 알프레드 보트퀴엔느(Alfred Wotquenne)가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작품들을
정리해 붙인 Wq(WQ)와 숫자로 표기된 보트퀴엔느 번호 "Wq.47"과유진 헬름(Eugene Helm)이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작품들을 재 분류해 붙인 이니셜 H와 숫자로 표기된 H번호 "H. 479"의
작품 번호가 붙여진 협주곡은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를 위한 이중협주곡 E flat장조
(Concerto doppio for harpsichord & Fortepiano in E flat major, H.479/Wq 47)의 작품 번호로 여기서
이탈리아어 '도피오(doppio)'는 영어로 더블(Double)이다.


이 작품은 바로크 시대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와 현대의 피아노와 비교했을 때 현이 가늘고 음역이 좁은
하프시코드와 현대 피아노의 중간 과정에 있는 18~19세기 피아노로 그랜드 피아노의 초기 형태였던
포르테피아노 즉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동반하는 2대의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으로
이중 협주곡(Double Concerto)으로도 불리는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Eflat장조는
1788년 함부르크에서 구성되어 같은해에 작성된 자필 악보(Holograph manuscript)로 전하며 20세기
초반에야 첫 출판된 빠르게-느리게- 빠르게의 고전기(Classical) 양식에 3악장제의 협주곡은 새의 깃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 플렉트럼이 기타처럼 현을 뜯어서 ’ 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와 건반을 치면 해머가 현을 ‘
때려서 ’ 소리를내는 (포르테) 피아노 등 다르지만 같은 건반 악기가 쓰이던 시기(쇠퇴하는 건반 악기
하프시코드와 그 자리를 대신하여 피아노가 건반 악기로 재편되는 18세기)에 구성되어진 이중건반협주곡 이다.

Double concerto in E-flat
( Wq47 ; H479 )
3 movements
I. Allegro di molto
II. Larghetto
III. Presto
(harpsichord, fortepiano,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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